津山まちじゅう博物館

인노쇼칸 유적지

쓰야마시 서부 요시이강 변에 위치한 인노쇼관 유적은 14세기 미마사카 지방의 수호직(슈고)이 거점으로 삼았던 저택 터입니다. 유배를 가던 고다이고 천황과 무장 고지마 다카노리의 충절에 얽힌 이야기로 잘 알려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쓰야마시 서쪽 끝 요시이가와 강을 따라 넓게 펼쳐진 평야에 인노쇼칸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미마사카국의 치안을 담당하던 수호직이라 불리던 군사행정관의 관저로 14세기경 세워졌습니다. 당시 이 같은 관저는 수호직의 주거지 및 쇼군의 명령을 수행하며 지방의 행정 사무를 감독하는 행정 중심지 역할 모두를 담당했습니다.

지금은 빈 터가 된 한 구역만이 관저 유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문의 비석에는 14세기에 유배된 천황을 위해 지은 것으로 전승되는 10자의 전설적인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전승으로 (이곳과 인접한 유서 깊은 사쿠라 신사(作楽神社)와 함께) 약 7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땅이 칭송받는 이유입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전해 내려옵니다. 1331년 고다이고 천황은 가마쿠라 막부를 쓰러뜨리려던 계획에 실패했습니다. 이로 인해 천황은 폐위되어 유배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유배지로 향하던 중 천황을 호송하던 자들은 인노쇼에 있는 수호직 관저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천황의 충신 중 한 명이었던 고지마 다카노리는 천황을 구출하고자 결의합니다. 그는 관저에 잠입하였지만, 경비가 너무 삼엄하여 구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고지마는 상징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관저터의 벚나무 껍질에 변치 않는 충성심을 읊은 10글자의 한시를 새긴 것입니다. 이것은 천황에게 자신은 천황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희망의 암호문이었습니다.

이 충의의 이야기는 서사적 역사 기록물 ‘태평기(太平記)’에 기록되어 이후 수 세기 동안 칭송받았습니다. 1869년, 지역 관리인들은 이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 사쿠라 신사를 건축할 것을 정부에 청원하였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고다이고 천황은 마침내 유배지에서 벗어나, 1333년에 일시적으로 권력을 탈환했다고 전해집니다. ‘태평기’에 고지마의 이름은 언급되었지만, 천황과 고지마가 재회했는지(혹은 이 극적인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여전히 추정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쿠라 신사의 보물 중에는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도검이 있습니다. 다치(太刀)라 불리는 이 도검은 널리 알려져 있는 가타나(刀)의 전신과도 같습니다. 강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형태로 칼날이 아래를 향하도록 허리에 차는 검입니다. 전체 길이 약 70cm로 가늘지만, 강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 도검은 당시의 우아하면서도 위엄 있는 양식을 보여줍니다.

칼날에는 13세기 도공의 이름, ‘구니유키(国行)’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명장들은 독자적인 기술을 계승하고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닌 평화와 수호의 상징으로 도검을 단조했습니다. 그들의 도검은 그때나 지금이나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이 도검은 1710년, 제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가 쓰야마 번주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사쿠라 신사가 1869년에 창건될 당시, 이 신사에 봉납되었습니다. 도검은 지금도 신사의 소유이지만, 현재는 오카야마 현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