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쿠리 겐포 고택
박람강기(博覽强記)의 뿌리를 찾아서.
쓰야마번 의사이자 서양학자로서 학문 발전과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쓰쿠리 겐포의 생가.

미쓰쿠리 겐포 고택은 쓰야마성 동쪽, 성동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에 있는 건물로 18세기 초의 건축물로 추정됩니다.
성동지구에서는 보기 드문 단층 건물로, 원래는 연립형 주택이었으나 양옆의 건물이 철거되어 현재는 독립된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기둥이 가늘고 서까래에 대나무를 사용했고 지붕의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는 등의 특징이 있으며, 에도 시대 중기의 이 지역 상가주택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미쓰쿠리 겐포는 쓰야마 번 의사이자 서양 학자였습니다. 겐포는 쓰야마 번 의사의 아들로 1799년에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형을 잃고 어린 나이에 가계를 이어받은 겐포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쓰야마에서 유학과 의학을 배우고 교토에서 의술 연구에 힘썼습니다.
1819년에 쓰야마 성하마을에서 개업한 겐포는 1823년에는 영주의 수행원으로 현재의 도쿄인 에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같은 쓰야마 번의 의사이자 네덜란드 학자였던 우다가와 겐신 문하에 들어가 서양학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네덜란드학이라는 말은 당시 서양의 학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과의 무역이 허용된 유일한 유럽인이었던 네덜란드인을 통해 서적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언어와 지식을 배운 겐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853년 페리 제독이 내항해 서양과의 무역 재개를 요구했을 때는 미국 대통령 친서의 번역을 명 받았으며, 같은 무렵 러시아의 푸탸틴이 왔을 때는 교섭단의 일원으로 나가사키로 파견되었습니다.
개국 후 본격적인 서양학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한 막부는 1856년에 서양학 연구기관인 번서조소를 설립하였는데, 겐포는 그 수석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천연두 예방을 위한 에도의 거점인 '오타마가이케 종두소'의 설립에도 힘썼습니다.
훗날 번서조소가 도쿄대학으로, 오타마가이케 종두소가 도쿄대학 의학부로 발전한 데서 겐포는 '일본 최초의 대학교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근대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우다가와 겐신에게 서양학을 배운 겐포는 수많은 번역서를 통해 서양 문화 도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쓰쿠리 겐포 고택은 겐포가 1812년에 도가와마치로 이사할 때까지 인성 형성기인 소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