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야마성 해설

【쓰야마성터】
혼노지의 변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운명을 함께 한 모리 란마루의 막내 동생 모리 다다마사는 지금으로부터 약400년 전, 미마사카국(오카야마현의 북부)의 다이묘가 되어, 1604년부터 1616년까지 햇수로 13년 동안에 걸쳐 쓰야마성과 성시 조카마치를 건설했습니다.
쓰야마성은 '쓰루야마'라고 불리는 산의 가장 높은 곳에 텐슈와 고텐이 있는 혼마루를 구축하고, 니노마루·산노마루를 비롯해 산 전체를 3단의 돌담과 90동이상의 망루 및 성문으로 무장한 성곽입니다.
이 성의 주인은 모리 가문이 4대에 걸쳐 이어졌고, 그 후 도쿠가와 장군가의 일족인 마쓰다이라 가문이 계승하여 메이지유신을 맞이했습니다.
성내 건물은 그 후 모두 철거되고 돌담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2005년에 비추야구라(망루)가 지난 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성터는 현재 '가쿠잔공원'으로 단장되어, 벚꽃의 명소로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텐슈】
'텐슈'는 쓰야마성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쓰야마성 및 성시 조카마치의 심볼입니다. 외관 5층, 내부도 5층 건물이며, 외부에는 박공 등의 장식을 전혀 하지 않은 심플한 구조이면서 총을 쏘기 위한 구멍이 101군데, 화살을 쏘기 위한 구멍이 59군데나 되었습니다, 그 높이는 22m, 여기에 높이 6m의 돌담 위에 세워져 있어, 그야말로 '심볼'이라는 말에 걸맞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 텐슈는 혼마루 서쪽 끝에 세워져 있었으며, 혼마루에서는 돌담과 2군데의 문으로 나누어져 있어, 비상시에는 텐슈 문을 닫아 성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텐슈의 최상층에는 호소카와 가라샤의 남편이자 고쿠라성의 성주 호소카와 다다오키에게서 받은 서양식의 남만종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빗츄야구라】
수많은 성내 야구라* 중에서 텐슈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야구라로, 혼마루에서 남쪽으로 돌출되어 지어져 있으며, 성시 조카마치를 횡단하는 '이즈모 가도'에서도 잘 보이는 야구라였다고 그림 등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폭 24m, 깊이 8m, 높이 13m의 이층 건물로, 지붕은 기와지붕, 벽은 흰색 회흙칠, 창문에는 격자를 넣고, 화살구멍 및 총구멍으로 무장한 야구라였습니다. 한편, 내부는 모두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10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이 야구라는 번주의 거실에서 복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번주 가족의 사적인 생활공간이었던 것으로 추측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림에는 벽이 '당지(唐紙)'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번주 가족 중 여성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빗츄야구라'라는 이름은 성을 축조한 모리 다다마사의 딸 '오마쓰'가 시집을 간 '빗츄노카미 이케다 나가요시'에서 따왔다고 전해집니다.
*야구라: 성에서 방어용 혹은 감시용으로 지어진 가설 또는 상설 건물

【쓰야마성의 해자와 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자 '공격의 산자'라는 별명을 가진 모리 요시나리의 아들로, 혼노지의 변에서 노부나가와 운명을 함께 한 보마루, 리키마루, 란마루 삼형제 중 동생이기도 한 모리 다다마사는 1603년, 미마사카국과 186,500섬을 받아, 햇수로 13년 동안에 걸쳐 쓰야마성 및 성시 조카마치를 건설했습니다.
요시이가와 강 북쪽에 있는 구릉 '쓰루야마'를 중심으로 해서 성을 쌓고, 동쪽은 미야가와 강을 해자로 삼았습니다. 북쪽·서쪽·남쪽은 해자와 성채로 적을 방어했으며, 성 내외를 6개의 문으로 나누었습니다.
성내와 밖은 흙으로 된 다리로 이어져 있었으나, 이 교바시몬 부분이 성의 정문이어서 후에 격식 있는 나무다리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 문 양쪽에는 돌담을 쌓아 쉽게 적이 성내로 침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츄몬】
성내 산노마루에서 니노마루에 이르는 등성로 정면에 있는 것이 '츄몬입니다. 이층 야구라 1층이 문으로 되어 있는 '누문'입니다.
과거 발굴조사에 의해 기둥 아래에 설치된 '초석'이 확인되어, 문의 구조와 규모가 밝혀졌습니다. 그 규모는 길이 32m(16칸)로 성내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에도 막부가 쌓은 성곽 이외에서는 일본 최대급의 누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성 통로는 대인원의 적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비교적 좁게 만들어지지만, 이 부분의 통로는 예외적으로 대규모여서 성을 축조한 주인 모리 다다마사가 방어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석 일부는 현지에 노출되어 있어 실제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오모테쿠로가네몬】
오모테쿠로가네몬은 혼마루 입구에 있는 누문으로 문 전체가 철판으로 덮여있는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문을 지나면 돌계단이 있습니다. 돌계단을 올라가 180도로 방향을 바꾸면 혼마루 고텐의 현관이 있습니다. 이 현관은 오모테쿠로가네몬 2층에 해당합니다. 현관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현관 마루인 시키다이라고 불리는 방이 있고 응접실인 ‘히로마’로 이어집니다. 더 들어가면 ‘하타자오노마’, ‘야리노마’로 이어지며 고텐의 큰 홀인 오히로마로 연결됩니다. 오모테쿠로가네몬은 성문뿐만 아니라 혼마루 고텐의 정식 입구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1809년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혼마루 고텐의 모든 건물 및 오모테쿠로가네몬, 우라쿠로가네몬 등은 소실되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석단을 관찰해 보면 화재로 붉게 변색된 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혼마루】
쓰야마성에서 가장 높은 곳은 '혼마루'라고 불리는데, 중앙 광장에 광대한 혼마루 고텐이 있고, 그 주변에는 텐슈와 야구라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고텐은 번주가 공적인 행사를 하는 '오모테고텐'과 일상생활을 하는 '오쿠고텐'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오모테고텐의 방은 맹장지에 그려진 그림으로 '고테이노마' '마쓰노마' '아지사이노마'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여져 있었으며, 오쿠고텐의 방은 거실 '고자노마', 침실 '온네노마' 등 기능에 따라 이름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고텐은 쓰야마번의 '관청' 기능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방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본래는 창고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야구라' 내부도 '혼마루 고텐'으로 이용하여 필요한 방수를 확보했다고 합니다.